빛과 피부: 하나가 아닌 스펙트럼

우리는 흔히 '햇빛'을 하나의 덩어리로 이야기하지만, 피부가 실제로 상대하는 것은 파장이 저마다 다른 여러 종류의 빛입니다. 이 첫 편은 지상에 닿는 빛이 어떤 스펙트럼으로 이뤄져 있고, 파장에 따라 피부의 어느 깊이까지 도달하는지를 지도처럼 그려 봅니다. 광보호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무엇으로부터' 지키는지를 파장 단위로 아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태양이 지상에 내려보내는 것
피부가 받는 빛은 단일한 광선이 아니라 파장이 다른 여러 대역이 섞인 스펙트럼(파장별로 늘어놓은 빛의 띠)이다. 파장은 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재며, 대략 자외선(UV, ultraviolet, 100~400nm), 가시광선(visible light, 눈에 보이는 빛, 400~700nm), 적외선(IR, infrared, 700nm 이상의 열선)으로 나뉜다. 지상에 닿는 햇빛에서 이 세 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외선이 5% 안팎, 가시광선이 절반가량, 나머지를 적외선이 채우는 것으로 정리된다.1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 가장 적은 몫을 차지하지만, 광생물학(빛과 생체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학문)에서 가장 먼저 다뤄져 온 대역이기도 하다.
자외선 안에서도 대역이 갈린다. 파장이 짧은 순서로 UVC(ultraviolet C, 100~280nm), UVB(ultraviolet B, 280~315nm), UVA(ultraviolet A, 315~400nm)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UVC와 UVB 대부분은 성층권 오존에 흡수돼 지상에 거의 닿지 않는다.2 그 결과 지상에 도달하는 자외선은 대략 UVA가 95%, UVB가 5%가량을 차지한다.2 즉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자외선의 대부분은, 파장이 길어 더 깊이 들어가는 UVA다.
파장이 깊이를 정한다
빛이 피부의 어느 깊이까지 도달하는지는 파장이 좌우한다. 일반적으로 파장이 길수록 더 깊이 침투하며, 이 관계는 자외선에서 가시광선·적외선에 이르기까지 파장에 따라 연속적으로 달라지는 것으로 측정된다.3, 4 피부는 바깥부터 각질층(stratum corneum, 표피 맨 바깥의 죽은 세포로 된 방벽), 표피(epidermis, 세포가 살아 있는 바깥층), 진피(dermis, 콜라겐·엘라스틴이 있는 안쪽 층) 순으로 쌓여 있는데, 파장별로 이 층들을 통과하는 정도가 뚜렷이 다르다.
UVB는 상대적으로 얕게 멈춘다. 입사한 UVB의 약 70%는 각질층에서 흡수되고, 약 20%가 표피에 도달하며, 진피 바깥쪽에 닿는 것은 10% 정도에 그친다.5 반면 파장이 긴 UVA는 표피를 지나 더 안쪽까지 들어가, 조사량의 20~30%가 깊은 진피에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보고된다.5 같은 자외선이라도 UVB는 주로 '표피의 빛', UVA는 '진피까지 가는 빛'인 셈이다.
가시광선과 적외선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파란빛 쪽(고에너지 가시광선, HEV, high-energy visible light: 대략 400~500nm의 짧은 가시광)은 최대 0.5~1mm 정도 깊이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파장이 더 긴 붉은빛은 진피 구조 대부분에 닿을 만큼 깊이 침투한다.1 근적외선(IR-A, near-infrared A, 760~1440nm)은 광학 대역 가운데 가장 깊이 들어가, 진피의 세포까지 직접 도달한다.6 정리하면 피부는 파장이 짧은 빛은 바깥에서 상당 부분 걸러 내지만, 파장이 길어질수록 그 빛을 더 안쪽으로 통과시킨다.
![[광보호의 과학] EP.1 본문 이미지](/beauty/insight/img/photoprotection-light-and-skin/02.jpg)
파장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깊이가 다르면 만나는 표적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달라진다. 표피에 주로 머무는 UVB는 세포의 DNA에 직접 흡수돼 광손상을 일으키는 대역으로, 이 직접 손상의 화학은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더 깊이 가는 UVA는 진피에 도달해, 활성산소를 매개로 한 간접 경로로 콜라겐을 다루는 효소계에 영향을 준다 — 이 산화 매개 손상의 연쇄는 자매 시리즈 「항산화의 과학」이 EP.3 손상의 연쇄에서 이미 정밀하게 풀어 두었다.
가시광선도 피부에 흔적을 남긴다. UVA1(340~400nm)과 가시광선(400~700nm)을 피부에 조사해 비교한 연구에서, 가시광선은 멜라닌이 풍부한 피부(스킨타입 IV~VI)에서 색소 반응을 유도했고 그 색소 침착이 UVA1보다 더 진하고 오래 지속됐다.7 파란빛을 포함한 가시광선은 피부에서 활성산소(ROS, reactive oxygen species: 짝을 못 이룬 전자를 가져 반응성이 큰 불안정한 분자)와 기질금속단백분해효소(MMP, matrix metalloproteinase: 콜라겐 등 피부의 바탕질 단백질을 잘라 내는 효소)의 생성을 유도하는 것으로도 보고된다.8 다만 이는 파장·피부 배경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는 반응이므로, 특정 피부색을 문제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어떤 빛이 어떤 표적을 건드리는가'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
가장 깊이 가는 근적외선은 진피의 섬유아세포(콜라겐을 만드는 진피 세포)에서 앞의 대역들과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근적외선은 세포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에 흡수돼, 미토콘드리아가 세포핵으로 보내는 역방향 신호(레트로그레이드 신호: 발전소가 세포의 사령탑에 보내는 되먹임 신호)를 통해 MMP-1(matrix metalloproteinase-1, 기질금속단백분해효소-1: 콜라겐을 잘라 내는 효소)의 발현, 즉 세포가 이 효소를 만들어 내는 양을 끌어올린다. 그 결과 콜라겐을 새로 만드는 쪽과 분해하는 쪽의 균형이 분해 쪽으로 기울며, 이 반응은 표피가 아니라 진피에서 나타나고 시험 대상의 약 80%에서 확인됐다.6
다만 같은 근적외선이라도 그 작용은 용량에 따라 방향이 갈린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낮고 조절된 용량의 붉은빛·근적외선은 같은 표적인 미토콘드리아(정확히는 시토크롬 c 산화효소, cytochrome c oxidase: 미토콘드리아 호흡사슬에서 빛을 흡수하는 색소단백질)를 자극해 에너지 생산을 늘리고 회복·재생을 돕는 쪽으로 작동하며, 이 원리가 광선요법(PBM, photobiomodulation: 빛으로 세포 기능을 조절하는 요법)의 근거로 보고된다.9 실제로 빛의 생물학적 효과는 낮은 용량에서 이롭고 용량이 커질수록 효과가 사라졌다가 해로워지는 이팽성 용량반응(biphasic dose response: 용량에 따라 효과의 방향이 뒤집히는 U자형 반응)을 따르는 것으로 정리된다.10 요컨대 근적외선은 '무조건 해롭다/이롭다'로 나눌 대상이 아니라, 태양광처럼 만성적·고용량으로 쌓일 때 앞서 본 광노화 경로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용량·조건 의존적 양면성은 장기 영향을 다루는 EP.10에서 정밀화한다.
빛의 대역마다 도달 깊이가 다르고, 그래서 건드리는 표적과 결과가 다르다는 사실 — 이것이 광보호를 '하나의 차단'이 아니라 '파장별 설계'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하나가 아니라 스펙트럼
'햇빛을 막는다'는 말은 편리하지만 부정확하다. 피부가 상대하는 것은 파장에 따라 깊이도, 표적도, 결과도 다른 여러 종류의 빛이고, 광보호란 그 스펙트럼을 파장 단위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떤 빛을 어디에서 어떻게 다룰지는 그 빛의 파장을 알아야 설계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그 지도를 한 편씩 채워 나간다 — 다음 편은 가장 얕지만 가장 직접적인 손상을 남기는 UVB의 화학, DNA에 새겨지는 광손상에서 출발한다.
![[광보호의 과학] EP.1 본문 이미지](/beauty/insight/img/photoprotection-light-and-skin/03.jpg)
참고문헌 · References
본 편의 인과·수치·효능 서술은 아래 peer-reviewed 문헌에 근거합니다.
Austin E, Geisler AN, Nguyen J, et al. Visible Light Part I. Properties and Cutaneous Effects of Visible Light. J Am Acad Dermatol. 2021;84(5):1219–1231. [A, 리뷰]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8887026/ ↩︎ ↩︎
Solar and Ultraviolet Radiation. In: IARC Monographs on the Evaluation of Carcinogenic Risks to Humans. (NCBI Bookshelf). [S, 기관 문서]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304366/ ↩︎ ↩︎
Meinhardt M, Krebs R, Anders A, Heinrich U, Tronnier H. Wavelength-dependent penetration depths of ultraviolet radiation in human skin. J Biomed Opt. 2008;13(4):044030. [A] https://pubmed.ncbi.nlm.nih.gov/19021357/ ↩︎
Finlayson L, Barnard IRM, McMillan L, et al. Depth Penetration of Light into Skin as a Function of Wavelength from 200 to 1000 nm. Photochem Photobiol. 2022;98(4):974–981. [A]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php.13550 ↩︎
Deciphering the Effects of Different Types of Sunlight Radiation on Skin Function: A Review. Cosmetics. 2024;11(3):80. [A, 리뷰] https://www.mdpi.com/2079-9284/11/3/80 ↩︎ ↩︎
Schroeder P, Lademann J, Darvin ME, et al. Infrared radiation-induced matrix metalloproteinase in human skin: implications for protection. J Invest Dermatol. 2008;128(10):2491–2497. [A] https://pubmed.ncbi.nlm.nih.gov/18449210/ ↩︎ ↩︎
Mahmoud BH, Ruvolo E, Hexsel CL, et al. Impact of long-wavelength UVA and visible light on melanocompetent skin. J Invest Dermatol. 2010;130(8):2092–2097. [A] https://pubmed.ncbi.nlm.nih.gov/20410914/ ↩︎
Liebel F, Kaur S, Ruvolo E, Kollias N, Southall MD. Irradiation of Skin with Visible Light Induces Reactive Oxygen Species and Matrix-Degrading Enzymes. J Invest Dermatol. 2012;132(7):1901–1907. [A] https://pubmed.ncbi.nlm.nih.gov/22318388/ ↩︎
Hamblin MR. Mechanisms and Mitochondrial Redox Signaling in Photobiomodulation. Photochem Photobiol. 2018;94(2):199–212. [A, 리뷰]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5844808/ ↩︎
Huang YY, Chen ACH, Carroll JD, Hamblin MR. Biphasic Dose Response in Low Level Light Therapy. Dose Response. 2009;7(4):358–383. [A, 리뷰] https://journals.sagepub.com/doi/10.2203/dose-response.09-027.Hamblin ↩︎